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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오시는 길

소개

서재필은 서광언과 성주이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의 친정인 전라남도 동북군 가내리(현 전라남도 보성군 문덕면 가천리)에서 그를 낳았다. 그러나 고향은 충청남도 은진군 구자곡면 화석리(현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금곡리)로 부모 형제와 친척이 모두 여러 대에 걸쳐 이곳에서 살아왔다. 서재필의 자서전에 「어렸을 때 6~7년 가량 살았다」하였고 「이 곳이 우리 할아버지 때부터 살던 나의 고향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서재필의 아버지 서광언에게는 아들 재춘, 재필, 재창, 재우 4형제와 연일인(延日人-전남 창평군) 정해은에게 출가한 딸이 있었다. 그런데 서재필은 5촌 당숙인 서광하에게 입양이 되었고, 7살 때 양모쪽으로 외숙이 되는 김성근의 집으로 상경하여 학문을 닦으면서 1879년 전강에 응시 급제하였다. 이 때부터 김옥균, 서광범, 박영효, 홍영식, 박영효 등과의 교유를 통하여 개화사상을 갖게 되었다. 김옥균은 외숙 김성근과 친척간이었고, 서재필과 아저씨벌되는 서광범과는 더욱 가까이 지낼 수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정치변혁인 갑신정변의 주도세력으로, 정변의 실패는 논산에 살던 일가친척이 비운을 맞이하게 된 곳이 이곳이다. 1977년 대한민국 정부는 서재필의 공로를 인정하여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그 후 1994년 서재필의 유해를 한국으로 봉환하여 4월 8일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하였다. 이 때 사약을 받았던 광산김씨의 유해(1994년까지 논산시 연무읍 화석리 뒷산에 초라한 무덤으로 있었음)를 봉환하여 같은 날 국립묘지에 안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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